한글 독립운동의 빛나는 유산 ‘금속활자’로 다시 조판 인쇄해
복원된 <큰사전>의 일부 10월 14일부터 30일까지 활판인쇄박물관에서 공개

 

석인 정태진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큰사전> 복원 행사가 파주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에서 10월 9일 열렸다

석인 정태진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큰사전> 복원 행사가 파주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에서 10월 9일 열렸다

 

한글 반포 574주년을 맞아 일제 탄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한글을 지켜낸 석인 정태진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큰사전> 복원 행사가 파주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에서 10월 9일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전쟁 시기 활판인쇄공들을 비롯해 구순에 가까운 원로 인쇄장인들이 참여해 주조기로 다시 금속활자를 만들고, 문선 조판해서 <큰사전>의 일부를 복원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정태진 선생은 경기 파주시 교하군(현 금촌2동)에서 태어나 조선어학회 사건의 첫 번째 구속자로 가장 오랫동안 고문당하고 해방 한 달 전에 출감한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다.

 

해방 후에도 모든 영예를 뿌리치고 일제 탄압으로 중단한 ‘조선말 큰사전’ 편찬 작업에 매진했다. “말과 글은 민족의 피요, 생명이니 목숨을 걸고 우리말을 지키자”는 어록을 남긴 그는 6·25전쟁 와중에도 사전 작업을 이어갔다.

 

정태진 선생은 6·25전쟁 중 조선말 큰사전 4권을 편찬하고 조판까지 마쳤지만, 인쇄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52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이에 ‘정태진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은 그의 고향인 파주출판도시에서 당시 <큰사전> 제작 방식과 동일한 활판인쇄로 복원 행사를 진행했다.

 

복원 행사에는 20여명의 활판인쇄 장인들이 참여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주조공, 활자를 찾고 조판하는 문선공과 조판공, 인쇄공, 제본공 등 전국에서 모인 장인들은 40여년 만에 다시 잡는 기계 앞에서 감회에 젖었다.

 

황인영(83) 장인을 비롯해 주조, 문선조판, 활판인쇄, 제책장비 시연 과정에 참여 장인들은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한 장인은 “어릴 나이에 사환으로 들어가 선배들에게 모질게 훈련받았다”며 “오늘 행사를 통해 어려웠던 당시 작업 환경도 떠오르고 우리가 한 일들에 대한 벅찬 자부심도 생긴다”며 주최 측에 고마움을 전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어려운 시기에도 ‘조선어 표준말 모음’과 <큰사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한글학자들의 피땀 어린 희생과 함께 활판인쇄공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활판인쇄 장인들은 <큰사전> 일부를 복원하는 작업을 마치고 간담회를 진행했다.

 

6·25전쟁 시기에서부터 활판인쇄가 사라진 1990년대까지를 회고하는 이 자리에는 정태진과 함께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대표인 소설가 방현석(중앙대 교수), 행사를 공동 주관한 다산북스 김선식 대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모순영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유족 대표로 참석한 정태진 선생의 손자 정시영 내외는 평균 40년의 경력을 가진 활판인쇄술 장인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활판인쇄박물관이 보유 관리하는 주조기(1954년산)로 금속활자를 찍는 작업에 참여한 박성복 장인(주조 경력 50년)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보유국인 우리나라에서 활판인쇄 문화가 사라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조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활판인쇄박물관 홍희표 실장은 “활판인쇄술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다산북스 김선식 대표는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정태진 선생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희생과 더불어 묵묵히 사전을 만들었던 활판인쇄 장인들이 있었기에 큰사전도 빛을 볼 수 있었다”며 참가자들에게 경의를 나타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모순영 사무처장도 축사에서 “우리말을 지키고 다듬어온 성과를 겨레말 큰사전 사업이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행사를 통해 복원된 <큰사전>의 일부는 10월 14일부터 30일까지 활판인쇄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