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지 않고 미용의학을 하는 ‘이류의사’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턴과정에 들어가니 어느덧 내 나이는 30 초중반을 향해가고 있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과도한 업무 속에서 나의 체력은 바닥이 나 버렸다. 어디까지나 변명이겠지만, 대학병원 안에서 비전을 찾을 수 없던 나는 대학병원을 나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을 위해 바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했던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의료계에서도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미용 시장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현장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들은 나의 큰 자산이 되었고, 현재는 적어도 내 분야에서 일 인분 이상의 역할은 해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따라서 나는 삼류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필수적인 의사는 아닌 ‘이류의사’이다.
최근 의사들의 파업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는 소외받는 지역의료의 활성화와 필수의료인력의 확보를 위하여 공공의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의료계는 의사 정원의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은 의료계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부의 주장은 공익에 부합하고, 의사들의 주장은 밥그릇 싸움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의사들은 본인들의 밥그릇을 위해서 환자의 생명을 저버리는 양심 없는 장사꾼들일까? 조금이나마 의료계의 현실을 알고 있는 이류의사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은 이류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이국종’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 다 다른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이 ‘이국종’들은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비뇨의학과 전문의들이다. 필자는 힘들어서 포기했을 정도로 힘든 전문의 과정인데, 왜 이들은 필수의료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지옥같은 수련 과정을 견디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미용시장 에서 일을 하는 것일까? 나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현상을 같이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하고, 그 안에 필수의료인력의 확보와 지역의료의 활성화에 대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들이 다시 사명감을 가지고 이국종 교수 같은 ‘일류의사’로서 활약할 무대를 만들어준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 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정부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공익을 위한다고 한다면 적어도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고 10~20년 후에나 나올 공공의사가 아니라, 즉시 투입 가능한 이들을 원래 위치로 돌려보내는 게 공익적인 측면에서 더 옳지 않겠는가? 필자의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다만 나는 이러한 이국종 들이 나 같은 이류의사로 살 수밖에 없는 의료계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의사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