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형 교육과정 시기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을 정하는 시즌이 되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너 뭐 들어? 나도 따라갈까?” 학생들은 과목을 선택할 때 자신의 적성과 목표보다 주변 친구들의 선택에 더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고교학점제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낯선 과목 앞에서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 이미 검증된(?) 선택을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행동경제학에서 ‘군중심리’ 또는 ‘사회적 증거 효과’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길을 따르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같은 과목을 선택하면 학습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정보 부족이다. 특정 과목이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자신의 진로와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친구들의 선택은 일종의 ‘안전한 기준’이 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택했다면 나도 문제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과목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람은 손실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손실 회피’라고 부른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 과목을 선택했다가 나만 힘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생기면, 검증된 선택을 선호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흥미보다 친구들이 많이 선택한 과목을 택하게 된다. 여기에 ‘집단 정체성’까지 작용한다. 친구들과 같은 과목을 듣지 않으면 대화 소재가 줄어들고,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은 걱정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 방식이 과연 옳은 걸까? 적어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고려하는 학생이라면, 이런 방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단순히 성적만 평가하는 전형이 아니다. 대학이 평가하는 것은 학생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어떻게 탐구해 왔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심화·발전시켜 나갔는가이다. 따라서 친구를 따라 선택한 과목보다는 본인의 관심과 진로 방향에 맞춰 능동적으로 선택한 과목이 더욱 의미 있는 학업적 탐구 과정으로 인정된다.
입학사정관들은 선택과목을 볼 때 과목 간의 연계성과 탐구의 일관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인문학을 좋아하는 학생이 ‘사회탐구’를 선택하고, 이후 ‘정치와 법’이나 ‘윤리와 사상’ 같은 과목을 들었다면, 이 학생이 인문학적 관심을 꾸준히 확장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선택한 과목이라면 학업적 동기가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선택과목은 진로와 연계된 학문적 호기심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다수의 선택’보다 ‘나만의 선택’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과목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단순히 친구들의 선택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과목이 자신의 목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이 과목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 "이 과목을 통해 학문적으로 어떤 확장을 할 수 있을까?", "학종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학업적 강점과 연결되는가?"
또한, 대학마다 선호하는 선택과목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학 계열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물리학Ⅱ’를, 경영학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경제’를 선택하는 것이 학업적 흐름을 강화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과목 선택은 단순히 시간표를 짜는 과정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학업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며, 대학 입시에서 자기주도적인 학습 태도를 입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친구들이 듣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의 학문적 탐구 방향을 설정할 기회를 놓치는 것일 수도 있다.
대학은 ‘자기 길을 개척한 학생’을 원한다. 남들이 선택한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결국 대학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신만의 길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발전시킨 학생이다.
과목을 선택할 때 친구들의 선택이 아닌, ‘나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학습 선택이며, 학종에서 강조하는 자기주도성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