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소확행부터 공주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2017년까지 대한민국 청년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유행어 중 하나는 ‘헬조선’이었다. 이 단어는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개인의 고된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자, 정치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구호였다. 청년들은 촛불을 들며 ‘나라다운 나라’를 꿈꿨고, 스스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2018년이 되자,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청년들은 더 이상 ‘헬조선’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기보다는, 당장 손에 잡히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퇴근 후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 '반려동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소소한 순간들이 그들에게 의미가 되었다. 미래를 바꾸려 했던 청년들은 이제 미래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청년들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나아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여전히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을 갚고, 주거난에 시달리고, 높은 취업 장벽 앞에서 좌절했다. 촛불을 들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이들은, 정권은 바뀌었지만,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청년들은 더 이상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 대신,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청년들이 유행하는 밈(Meme)을 보면, 다시 새로운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미룬이’ ‘칠가이’, ‘공주의 법칙’, ‘갓생’ 등 청년들 사이 유행하는 밈을 보면 그 속에서 희망의 조짐을 찾을 수 있다. ‘미룬이’는 "일을 미루는 사람"을 가리키는 동시에, 미루면서도 결국 해내는 모습이 현실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칠가이(칠링가이)’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말자"는 태도를 보여준다. ‘공주의 법칙’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공주처럼 쿨하게 넘기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갓생’(부지런하고 계획적인 삶)은, 과거 소확행이 단순히 작은 기쁨을 찾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려는 태도로 발전했다.

 

이러한 밈들은 완벽함을 강요하는 사회적 기대 대신, 실용성을 중시하고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기만의 페이스를 찾아가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과거의 ‘헬조선’이 분노를 기반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였고 ‘소확행’은 더 이상 바뀌지 않는 사회를 수용하고, 작은 행복이라도 찾으려는 태도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흐름은 다르다. ‘칠가이’나 ‘공주의 법칙’처럼, 현실을 비관하기보다는 여유롭고 쿨한 태도로 극복하려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변화를 보면, 여전히 이 사회에 희망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싸웠다면, 지금은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사회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며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며,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있다.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와 태도는, 결국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또 다른 움직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