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가 감춘 우리 영웅들의 흑역사를 까발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이나 인물에 대한 이미지는 다분히 학교에서 배우고, 방송이나 언론, 매스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진 것이 많다. 역사적 팩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검증하고 도전을 받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비판하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일제시대와 관련하여 기존의 상식과 배치되는 주장이 나오면, 온나라가 들썩인다. 최근의 반일종족주의를 집필한 학자들이 공공연한 수난을 당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런 인신공격에는 주류 언론들이 앞장선다.


이런 삭막한 지적 풍토에서, 기존의 해석과 배치되는 새로운 시각의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진명행(眞明行) 씨의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이라는 신간이다. 집필 당시 이 책의 원고 제목은 <뒷골목의 독립운동사>였다. 왜 뒷골목이어야 했을까. 사람들은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시의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 그 속의 일원이 되어 사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뒷골목은 온갖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물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교과서와 평전에 기술된 교훈적이고 긍정적인 인물과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들이 대거 생략되거나, 왜곡되어 서술된다. 이것은 어쩌면 국가나 권력의 의도에 맞게 역사가 조작의 길을 걸어왔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근자에 일제시기 공문서나 재판기록들이 번역되어 세간에 알려지면서, 우리의 영웅들에 대한 이미지도 이제 도전을 받는 시기가 왔다. 진명행 씨는 오래전부터 그런 자료들을 수집해, 분석하는 일을 해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준에게 열사의 칭호를 부여하며, 만국평화회의 회담장에서 할복 자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지 오래되었지만, 학교에서 배운 얘기들이 여전히 관성처럼 지배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새야새야 파랑새야' 구전민요를 소개하며, 떨어진 녹두꽃이 녹두장군 전봉준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 민요는 전봉준이 태어나기 60년전부터 민간에 유행된 노래일 뿐만 아니라, 지방별로 그 가사의 내용도 천차만별임을 진명행 씨는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고종이 나라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헤이그에 밀파한 것으로 알려진 3인의 특사들은 사실 고종의 어새를 위조하여 어명을 조작하고, 외국의 황제에게 가짜 친서를 바친 뒤, 특사를 사칭했다는 새로운 반론을 제시한 점은 흥미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시대 3대 항일무장투쟁이 사실은 전과가 미미한 소규모 전투에 불과했고, 그나마 대전자령 전투는 실체가 없는 허구의 승전임을 일본의 공문서 등 1차 사료를 통해 분석했다. 대통령까지 유해를 모셔오는 이벤트를 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는 만주의 독립군들은 사실, 같은 동포의 재물을 약탈하고 괴롭혔을 뿐 아니라, 영역과 권세 다툼으로 같은 독립군들끼리 습격하여 죽이고, 관헌에게 밀고를 일삼았던 사람들로, 그 영웅적 면모 뒤에 가려진 치부를 함께 밝히고 있다. 이런 시각은 사실 기존의 연구나 저서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저자는 반일의 상징 안중근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한다. 특히 방송과 언론에서 무차별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안중근 관련 미담에 대해 하나씩 각개 격파하듯, 허구를 지적하고 있다. 인물에 대한 지나친 영웅화는 결국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데에 그 경각심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역사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근본적으로 사회의 모든 갈등과 이념적 대립이 역사인식의 문제와 관련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해방전후의 근현대사는 국사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권에 의해 왜곡이 심하게 자행되어 왔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다.


한 가지 우려되는 바는, 우리 사회가 아직 다양한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는 사회적 작용이 부족하다. 학문적 관심과 연구마저도 색안경을 쓰고 짓밟는 데 혈안이 된 분위기 속에서, 양심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진명행 씨의 출간은 아직 덜 성숙한 사회의 여건 속에서 일종의 큰 도전이라 할 수 있겠는데, 과연 이 파고를 넘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가 잘못된 정보나 지식에 휘둘리지 않는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연한 생각이 앞선다.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 진명행(眞明行) 지음, 양문, 2021년 11월 15일, 18,000원
300쪽 152*230mm 570g / ISBN 9788994025841

 


목차
프롤로그
추천사
1. 조선이 망하던 날, 아무도 울지 않았다
2. 뮤지컬로 환생한 국모(國母), 민비
3. 의병으로 둔갑한 구한말 화적 떼
4. 동학란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나?
5. 헤이그 밀사를 사칭한 사람들
6. 역사 왜곡의 민낯, 청산리 전투
7. 동포에게 마왕으로 불린 독립운동의 별, 김좌진
8. 봉오동 전투의 허구
9. 국민회가 창작한 영웅 홍범도
10. 독립군을 담보로 차관 거래한 상하이 임시정부
11. 자유시 참변과 홍범도의 변절
12. “도윤 각하, 강도 집단 군정서를 포살하소서”
13. 일본 중심의 동양 질서를 추구했던 천황주의자 안중근
14. 패션 반일과 마케팅으로 얼룩진 안중근의 정신
15. 허울 좋은 망명 정부, 상하이 임시정부
16. 돈과 지위를 좇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김원봉
17. 영화 『밀정』이 왜곡한 의열단 투쟁
18. 권력과 욕망의 화신, 김구
19. 전향과 변절의 길로 간 여운형
20. 희생자로 둔갑한 공산주의자, 조봉암
21. 취직하러 왔다가 폭탄 들고 떠난 주색꾼, 이봉창
22. 김일성 만주 항일 무장 투쟁의 실체
23. 구한말 군대는 누굴 위해 존재했나?
24. 임정이 날조한 대전자(大甸子)령 전투
25. 태항산의 호구, 조선의용대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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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도 (jj@theindex.co.kr)